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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역학회 소식

[인터뷰] 한국역학회 기획인터뷰 (1) 김일순 교수와의 대화

  • 작성자한국역학회
  • 작성일2019-05-29
  • 조회수4034

[인터뷰] 한국역학회 기획인터뷰 (1) 김일순 교수와의 대화

 

2017112010시 연세의료원 종합관 450호 -김일순 교수님 인터뷰

대담자: 김현창(연세대학교의과대학)

글.사진: 최영주(한국역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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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역학의 선구자 김일순명예교수님께 역학의 역사를 듣는다.’

2017년 늦은 가을 연세의료원 종합관 450호에서 한국역학회 김현창교수님과 우리나라 역학의 선구자 중 한 분인 김일순명예교수님의 인터뷰가 있었습니다. ‘역학은 내 운명이었다고 본다.’ 라고 하신 김일순명예교수님의 인터뷰가 일문일답 형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 교수님 어떻게 역학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얘기 좀 해주세요. (김현창교수)

우리가 학교 다닐 때는 의대생을 대상으로 기생충 검사를 하면 기생충이 없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어요. 당시 가장 중요 사망원인은 전염병이었지요. 그런데 전염병의 발생규모는 물론 우리나라 사람들의 사망원인과 그 규모를 정확히 알 수가 없었어요. 왜냐하면 의료시스템이 갖추어지지 않았고, 의사의 수도 많지 않았고, 많은 국민들은 돈이 없어서 병원에 가지 못해 사망하면 무슨 병으로 죽었는지 정확한 진단을 받지 못하고 있었지요. 그 당시에는 90%가 농민이고, 문맹이었어요. 농촌사람들이 병원을 한번 가려면 교통편이 별로 없어 집에 있다가 돌아 가셨는데  사망 진단서를 법적으로 면장이 써주는 것은 인정을 받았습니다. ‘갑자기 숨이 끊어 졌습니다.’ 하면 호흡사’, ‘심장이 정지했어요.’ 하면 심장사로 사망진단을 해 주었지요. 이런 식으로 써줬기 때문에 우리나라 사람의 사망원인을 정확하게 알 수 없는 그런 시절 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시절은 콜레라 장티푸스를 위시한 각종 전염병의 유행이 지속적으로 오는 시대였어요.

예방의학은 처음에는 위생학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하였습니다. 심상황 교수 같은 분은 서울대학교에서도 위생학을 가르치고 연세대학교에서도 강의를 하셨지만, 이분은 주로 의복 위생에 대해 전공하셨지요. 그 후 1948년에 졸업하신 양재모 교수가 한국 동란 직후인 1953년도에 미국 미네소타 보건대학원에서 보건학 석사 공부를 하고 귀국하여 그 뒤를 이었고 교실 명칭을 예방의학 및 공중보건학 교실로 바꾸고 교실을 본격적으로 재건하셨습니다. 그리고 통계학, 역학, 보건행정학, 환경위생학 이런 네 가지 분야를 혼자서 다 강의하셨어요. 그때 내가 양재모 교수 강의를 듣다가 나는 예방의학을 해야겠다라는 생각을 굳게 하게 되었습니다.

한 아프리카 지역에서 미국 선교사가 가서 보니 멀리서 물 길러 먹는게 힘들어 보여 파이프를 설치해서 수돗물을 그 동네에 설치해 줬어요. 그런데도 사람들이 멀리 우물로 간단 말이에요. 그래서 왜 그런가 보니 여자들이 우물에서 모여 사람도 만나고 이야기하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그렇다는 강의를 듣고 의학이라는 것이 단순히 환자를 진료하는 것이 아니고 그 범위가 사회생활 전역으로 넓은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가지면서 나는 앞으로 예방의학을 전공하기로 마음을 먹게 되었습니다. 그때가 본과 2학년이었어요.

졸업을 하고 양재모 선생을 찾아 제가 예방의학을 전공하고 싶습니다했더니 그렇게 반가워 할 수가 없는 거에요. 왜냐하면 그 당시 조교 한 사람도 없이 혼자서 교실을 운영하시고 계셨는데, 내가 처음으로 조교를 하겠다고 지망했으니 얼마나 반가웠겠습니까? 우선 임상을 1년하고 교실에 들어가겠다고 해서 먼저 세브란스 병원에서 인턴 1년을 했지요.

  • 당시 우리나라 의료계 상황은 어땠고, 수련은 어떻게 받으셨나요?

그 당시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병원이 세브란스와 서울대학병원이었어요. 병상수가 각각 150 200병상 정도 였습니다. 그런데도 빈 병상이 많았습니다. 사실 환자는 무지하게 많지만 돈이 없어 병원에 못 오니까, 병원 경영이 굉장히 힘든 상황이었어요.

그런데 그때 미국에서는 병원을 짓는 붐이 일어 났어요. 경제가 성장하면서 미국에서도 병원이 모자라 전국적으로 병원을 지었는데 의사를 구할 수 없으니까 외국에서 의사를 불러 들이기로 하고. 외국 의사가 미국에서 의료행위를 할 수 있기 위해서는 ECFMG (Educational Commission for Foreign Medical Graduates) 라는 시험이 있었는데 외국에서 온 의사들이 practice 하려면 그 시험에 합격을 해야 되었어요. 내가 본과 4학년때 그 제도가 처음 생겨서 시간 날 때 마다 의학과 의학 영어 등의 시험공부를 했고, 시험을 보고 나서 난 군대를 갔어요. 군대서 훈련을 받는 동안 어머니께 편지를 받았는데 ECFMG 합격통지서를 받았다고 하더라구요.

내가 군대 갈 때는 인턴 중 10%는 의무적으로 군에 가야 하는 때였어요. 인턴을 마치고 나는 예방 의학을 하기로 마음 먹었 기 때문에 당시 이병희 학장님을 찾아 가서 제가 예방의학을 전공하기로 했기 때문에 군대에 가야겠습니다.’ 그랬더니, 학장님이아니 예방 의학을?? 굶어 죽으려고??’ 그렇게 말하더군요. 하하하. 그때는 예방의학이 할 일도 없는, 굶어 죽는 그런과였어요. 그 당시 군대에 가면 군3년 마치고 제대를 제 때 할 수 있는 사람이 별로 없어요. 군에서 군의관이 부족하니까 제대를 안 시켜 주었지요. 당시 제대를 하려면, 국회의원에 입후보하거나 아니면 미국에 인턴 간다고 해야 제대가 되었어요. 그래서 ECFMG도 합격해서 군 마지막에 미국 병원에 apply 해서 인턴 결정이 되어서 제대가 되었지요.


  • 미국에서는 어떠셨는지요?

양재모 선생을 찾아가서 미국 가서 인턴 1년을 하고 공중보건학을 하려고 한다 했더니 좋다. 미국 가 있는 동안 CMB (China Medical Board) 도움을 받아 장학금을 받도록 노력해 보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미국에서 인턴 1년을 하고 존스 홉킨스 보건대학원에서 보건학 석사를 했어요. 석사 공부할 때도 월 200불씩 장학금을 받고 다녔어요. 존스 홉킨스 다닐 때 전공을 역학으로 선택했어요.


  • 역학을 전공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내가 군의관으로 있을 당시 군대에서 젤 큰 질병문제가 뭐 였냐 하면 유행성 출혈열이었어요. Epidemic Hemorrhagic Fever 그게 등줄쥐로부터 옮겨와서 군인들이 열이 나고 죽고 하는 건데, 군대에 유행성출혈열 연구 반이 있었어요. 내가 거기에 지원했고 거기서 역학군의관으로 명칭을 받고, 군대에서 유행성출혈열 걸린 사람이 있으면 내가 가서 역학조사를 했거든요. 그래서 존스 홉킨스에서 역학을 전공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에 귀국한 해가 1968년도 11월이고 그 다음해 3월에 전임강사 발령을 받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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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오셔서는 역학자로서 어떤 일을 주로 하셨나요?

내가 오고 얼마 있다가 김정순교수가 미국에서 박사까지 하고 나왔는데 대단한 분이었죠. 나 보다 한 해 선배이시고, 서울대에서는 역학 연구와 교육을 주로 하셨기 때문에 많은 업적을 내셨죠. 난 우리대학에서는 역학 외에도 할 일이 엄청 많아서 역학만 하지는 못했어요. 그래도 뭔가 역학적인 연구를 해야 되잖아요. 그런데 그 당시에는 연구비란 존재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내가 한 첫 번째 연구가 의사들을 대상으로 한 코호트 관찰을 통한 한국 의료인의 질병력이라는 제목의 연구였어요. 질문서를 모든 의사에게 보내는 겁니다. 몇 년도에 태어났고 무슨 병에 언제 걸렸는가를 조사했는데, 첫 번째 질문서 편지에 에 50%가 반응해 주었고 한번 더 보냈더니 76%까지 반응 율이 올랐습니다. 의사니까 자기의 병에 대해 잘 안다는 가정을 하게 되었지요. 출생 년도와 무슨 병에 몇 년도에 걸렸는지에 대한 데이터가 있으니 코호트 자료가 나오는 거에요. 그게 73-74년도였습니다.

그 담에 뭘 했느냐 면요. IDRC라고 있어요. International Development Research Center 라고 동양본부가 싱가포르에 있었습니다. 이 기구에 연구비를 신청하여 승인을 받았습니다. 그 당시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전국규모의 조사가 결핵 유병률 조사였어요. 전국의 여러 작은 지역을 표본으로 하여 그 지역 주민 전수 검사 하는 거에요. 결핵 조사 내용은 가슴 엑스선, 객담검사 그리고 튜베르클린 피부검사를 하는 겁니다. 그때 그 표본을 대상으로 혈압을 재 우리나라 국민의 혈압현황을 알아보자는 생각이 떠 올랐어요. 그러면 돈 안들이고 표본 조사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그래서 간호사 몇 사람 해서 그 팀에 끼어서 혈압을 재서 우리나라 전체의 혈압 패턴을 쟀어요. 그게 우리나라 80년대 고혈압 유병률 첫 번째 조사였습니다.

그 뒤에는 독일의 EZE라고 하는 기독교재단의 재정적 지원을 받아 강화도 지역사회 역학조사를 했어요. 지역사회 역학조사의 초점은 무슨 질환을 가진 환자가 얼마나 되며, ‘의사가 없을 때 어떻게 해야 하나?’ 가 가장 큰 문제였어요. 아기를 낳다가 감염이 되어 엄마와 아이가 죽는 일이 많았어요. 그래서 보자기에 가위와 탯줄을 묶는 끈을 넣어서 임신을 하면 나누어 줬어요. 지역보건요원들이 그 일을 담담할 수 있도록 우리가 교육을 시켜 줬어요.

그리고 복지부 일도 많이 했어요. 의학 분업 때에는 의료제도 특별위원회위원장을 맡았어요. 내가 맡은 이유는 의사의 파업은 절대 해서는 안된다라는 글을 중앙일보에 올렸더니 대통령과 보건복지부 장관이 그 글을 보고 위원장을 시켜줬어요. 그런 일 외에도 의료원장, 학장 이런 일을 많이 하다 보니 사실 역학 연구에서는 큰 업적을 내지 못했어요. 하하하.

 

  • 그 시절에 활동하시면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으신가요?

우리나라가 콜레라가 계속 발생되기 때문에, 방역관으로 가서 일을 해달라는 복지부의 요청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강원도, 부산, 충남 홍성 그 세 군데를 몇 년에 걸쳐 역학적인 연구와 방역책임자로서의 역할을 담당 했었어요. 강원도로 가려면 대관령을 넘어 가야 되는데 그때는 길이 포장이 안 되어 있었어요. 한번은 강원도를 가는데 비가 와서 대관령 길이 진흙탕 길이었어요. 잘못하면 미끌어 낭떠러지로 떨어질 판이에요. 우여곡절 끝에 4시간 늦게 도착 했더니 도청 보건과에서 는 방역 관이 중앙에서 온다고 하니 목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더라구요. 요즘이야 길이 좋으니 그런 일은 없지요. 그 당시 방역 중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환자를 격리하는 것이었는데 격리할 곳이 없었지요. 그러니까 비인권적인 행위지만 환자의 집을 완전히 격리 차단해서 아무도 들어 가지도 나오지도 못하게 하는 방법을 썼답니다. 그래서 그 집에 살던 사람은 며칠씩 격리를 당했어요.

한번은 서울 호텔에서 콜레라 신고가 들어와서 호텔 전체를 며칠씩 격리시킨 적도 있었어요. 잠복기가 3일이니 3일동안은 아무리 높은 사람이라도 밖에 나오지 못하게 하고 호텔 직원이랑 투숙객 전체를 무조건 격리했어요. 콜레라 치료는 항생제와 수액주사를 계속 놔주는 건데, 의료진도 따로 없고 간호사가 와서 치료해주는 게 다였어요.

 

  • 현재는 역학이 임상과 콜라보레이션이 많거든요. 교수님 활동하실 때는 임상에서 보는 역학은 어땠나요?

그 당시 임상의들은 예방의학을 굉장히 싫어했어요. 어떤 대학에서는 예방의학과를 없애자 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어요. 예방을 다 하고 나면 치료할 환자가 없어지잖아요?? 하하하.

 

  • 젊은 의사들 중에 임상을 포기하기 싫어서 환자도 보면서 예방의학이나 역학을 같이 하고 싶어 하는 경우도 있는데, 교수님은 임상에 대한 미련은 없으셨나요?

전혀 없었어요. 임상적으로 전문화 하면 할수록 사람을 인간으로 안보고 병만 들여다 보게 되지요. 요즘은 환자를 안보고 컴퓨터만 봐요. 며칠 전 타임지에도 의사 선생님 컴퓨터만 보지 말고 제발 나를 봐주세요.’라는 기사를 봤어요. 전문화 될수록 그렇게 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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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재의 역학을 어떻게 보십니까?

지금 예방의학 분야가 많이 위축이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내가 보기엔 머지않아 다시 바뀔 겁니다. 만성퇴행성질환이 발생하는 이유는 치료를 못 받아서가 아니라 그 동안 생활 방식이 잘못 된 것에 대한 지식이 없어서 예방을 못해서잖아요. 따라서 예방에 초점을 맞춰서 생기지 않도록 해야지, 생기고 나서 고치는데 막대한 돈을 들이는 건 맞지 않거든요. 그런데 그런 게 요즘 차츰 보여요, 요즘 사람들한테. 앞으로 의료원 같이 큰 병원 짓는 일이 30년 지나면 줄어 들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올 거에요.

사다리를 올라가는데 사다리가 부러져서 사람들이 떨어져 다치고 있는데, 사다리를 고칠 생각은 안하고 떨어져 다친 사람을 치료할 생각만 해요. 평균수명이 증가하는 것은 치료를 잘해서 증가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방식이 제대로 되기 때문에 그런 거에요. 내가 의대 다닐 때는 영양부족이 제일 큰 문제 였어요. 신체 검사를 하면 갈비뼈가 안 보이는 사람이 없었어요. 그런데 70년대 후반이 되니 갈비뼈가 안보였어요. 현재는 영양과잉이 갑자기 닥쳐서 임상에서 그로 인한 질병을 치료 하느라 바빠요. 하지만 앞으로 생활방식의 개선을 통해 만성퇴행성 질환 발생자체가 줄어드는 시대가 올 것입니다. 만성 퇴행성 질환의 발생원인은 생활방식의 문제에 의한 것이니까 결국 앞으로는 예방을 통해 질병 발생의 대부분을 막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제 만성 퇴행성 질환의 발생원인(위험요인)90%는 이미 역학적인 연구를 통해 알아냈기에 이제는 건강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지는 대개 잘 알려져 있지요. 식생활은 어떻게, 운동은 어떻게 그리고 스트레스 관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거의 잘 알려져 있지만 아직 실천을 잘 하지 못해 건강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니까요. 따라서 앞으로는 병 없이 건강하게 오래 사는 사람들의 수가 급속하게 증가하고 질병으로 조기에 사망하는 사람들의 수는 크게 줄어들 것으로 보입니다.


  • 메르스 같은 큰 문제가 생기면 역학자를 찾지만 평소에는 찾지 않지 않습니까?

역학자들의 입지가 줄어 든 것은 하나의 과정일 뿐입니다. 앞으로 일반 국민에게 적용해서 질병이 안 생기게 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의학의 최종 목표는 모든 사람이 질병이 없는 사회 즉, 죽음의 원인이 질병이 아니라 자연사 노쇠사가 주를 이루어야 합니다. 지금도 95세 이상 노인의 경우 40%가 자연사, 노쇠사입니다. 치료를 잘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생기지 않아야 합니다. 의학의 최종목표에 맞게 가는 것이 예방의학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틀림없이 그렇게 갈 거에요.

 

  • 골든에이지포럼 회장을 맡고 계신데 은퇴 후 고령자 사회에 많은 일을 하고 계시죠?

그것도 내가 역학을 해서 고령자의 건강관리에 대해 할말도 있고, 방법에 대해서도 보이는 것이많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노인의 기준도 크게 상향되어야 할 것입니다. 미국에는 은퇴연령제도가 따로 없습니다. 나와 동기 동창인 친구 한 사람은 83세인대도 아직 계속 교수로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나이가 들어도 생산성이 높고 활동적으로 연구를 하기 때문입니다.

 앞으로는 단순히 오래 사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인간의 존엄성이 지켜질 때까지 인간답게 사는게 중요해요. 그러려면 식습관, 식생활이 변화 해야 되는 거예요. 내가 예방의학교실에 온 뒤로 아직까지 나의 스승들은 모두 건강해요. 바로 예방의학의 살아 있는 증인들이에요. 하하하.

 

  • 교수님은 우리나라 최초의 금연 운동가이신데요?

1988년 한국금연운동협의회를 만든 후 22년간 협의회를 맡아 금연운동을 했습니다. 이것도 내가 역학을 전공했고 또한 역학자로서 해야 할 일이라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흡연 행위는 전 세계적으로 불법화해야 하는 나쁜 습관입니다. 담배 한두 번 핀다고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니고 지속적으로 담배의 나쁜 성분들이 들어 가니 문제가 되는 것이에요. 예전에는 담배의 유해성을 잘 몰랐던 시절이 있었어요. 영국의 Doll 박사가 무려 60년간 영국인 의사들을 대상으로 한 담배의 피해에 대한 코호트 연구는 우리 역학하는 모든 분들의 귀감이 되는 부분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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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앞으로 역학자들의 역할 및 해주고 싶은 말씀은?

EpidemiologyEpiupon이라는 뜻이고. Dem은 인구라는 뜻이죠. Epidemiologyupon population 이에요. 인구를 대상으로 하는게 역학입니다. 인구를 대상으로 오랜 시간 관찰하는 것이 역학이거든요. 또 그렇게 해야 역학이 되는 겁니다. 사람을 들여다 보고 사회를 알아야 해요. 예방의학교실에서 나에게 큰 도움은 준 사람들은 인구학자, 사회학자, 경제학자들이 었습니다. 사회학과 경제학이 역학을 하는 나에게 큰 영향을 줬어요. 옛날의 역학자는 생긴 문제를 막기 위해 새로운 원인을 찾아 내는 연구를 하지 않습니까? 그 원인에는 인구학적, 사화학적 그리고 경제학적 요인들이 혼합되어 있기 때문인지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이야기를 하려면 우리 주변 학문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합니다. 앞으로 4차 산업 시대를 맞아 넘쳐나는 빅데이터들을 활용하여야 합니다. 아이디어만 반짝반짝하면 역학자들의 할 일이 매우 많습니다. 우리 역학자들의 역할이 더욱 빛날 것으로 기대합니다. 역학이란 질병과 불() 건강의 원인을 찾아내는 학문입니다. 즉 질병 없는 사회를 향해 가장 큰 역할을 담당하게 될 중요한 학문입니다.

 

  • 약력

: 연세의대 명예교수 

     한국골든에이지 포럼 대표회장 

: 연세의대 예방의학교실 주임교수

    연세의료원 기획실장

    연세의대 학장, 보건대학원장, 의무부 총장 겸 의료원장

    한국역학회 회장

    대한예방의학회 회장

    한국건강증진학회 회장

    한국기초의학협의회 회장

    한국금연운동협의회 회장

    의료제도 발전특별위원회 위원장(대통령 위원회)

    보건의료기술연구정책 심의위원회 위원장(보건복지부)

상벌:국민훈장 모란장

     WHO International Recognition Medal for Tobacco Free Society

     Kazue McLaren Leadership Achievement Aw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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